wonho lim(혜일) 2014. 9. 17. 11:24

 

        

        大方廣佛華嚴經 略纂偈(대방광불화염경 약찬게) 강의        (동산법사단)

                                                                                                              2014, 9,12 (금) 혜일 임 원 호

 

15)主山神衆主林神:주산신중주림신)(주산신과 주림신)

*山神(산신)은 산의 주인으로서 제 8 童眞住(동진주)가운데 願(원)바라밀에 해당된다. 산은 높고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8住 8行 8回向 8地 모두 공 없는 지혜(無功智)로서 동요함이 없기 때문에 거기 비유한 것이다. 화엄경에는 원 바라밀 가운데 해당되는 10度(도) 산신 등 열 분이 나온다. 寶峯(보봉) · 華林(화림) · 高幢(고당) · 離塵(이진) · 光照(광조) · 大力(대력) · 威光(위광) · 微密(미밀) · 普眼(보안) · 金剛 등이 그 분들이다.

 

그런데 한국인들의 산악신앙을 간단히 서술하여 화엄의 산신신앙과 비교해 보고자 한다. 한국인의 산악신앙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실천되었다. 전국토의 3분의 2가 산으로 형성된 나라이므로 천체신앙 다음으로 가장 지극한 신앙으로 숭배되었다.

 

후한서 동위전에 ‘그들은 산천을 숭배하되 그들의 部界(부계)가 따로 있어 피차를 간섭하지 아니 했다.’ 고 하였다. 또 그들의 ‘신앙에는 범에게 제사를 드려서 그것을 신으로 섬기는 경향이 있다.’ 하였으며 이것이 호랑이 산신령이 생기게 된 동기가 아닌가 생각된다.

 

산에는 호랑이가 있고 호랑이는 무서운 동물로 때로는 사람을 잡아먹는 행패가 있었으니 고대인들은 그것이 산신령이 분화신으로 나타나 벌을 준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그 같은 신앙이 나타나게 된 것이라 추정된다. 실로 산은 위대한 존재다.

 

이 세상 모든 존재가 다 산을 의지해서 살다가 마지막 죽어서도 그 속에 파묻혀야 하기 때문에 산은 어머니의 품안처럼 따뜻하게 느껴졌고 또한 아버지처럼 위엄 있는 신으로 모셔졌다. 단군신화에서 보면 산은 신의 강림처로 인식되었고 또 신의 주거지이면서 마지막 죽어서는 산신이 된 것으로 이해되었다.

 

고구려의 鶻嶺(골령)은 하늘이 동명왕을 위해 직접 성을 지어준 봉우리라 전해지거니와 백제 금산사의 모악산은 우주의 축(宇宙軸)으로서 증산교에서 이해하고 있다. 말하자면 천신들이 지상에 내려올 때는 반드시 산을 이용하였기 때문에 산은 하늘과 땅의 중간매체로서 사람으로 말하면 배꼽, 머리의 가마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믿었다.

 

또 하늘에서 내려온 모든 신들은 대부분 지상을 지켜주기 위해 하늘로 올라가지 않고 단군왕검처럼 산신이 되었다고 믿는 경우도 많았다. 가락국의 시조모 正見母主(정견모주)와 토함산의 산신으로 신봉되고 있는 탈해왕이 그 예이다.

 

여기서 남자신과 여자신이 생긴다. 신라에는 선도성모의 신앙이 있고 또 혁거세를 낳았다는 西述聖母(서술성모) 이야기도 나온다. 특히 선도성모는 지혜비구니의 불사를 도왔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여자는 처음부터 산신으로 여겨졌는데 남자는 반드시 죽은 뒤에 산신 화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母系(모계)중심 사회에 있어서 어머니는 산과 같이 인식하고 남자는 외부에서 온 것처럼 생각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檀君(단군)은 하늘로부터 왔고 탈해는 바다 출신이다. 그래서 산신을 보면 바로 왕을 본 것처럼 여겨졌다.

 

경덕왕과 현강왕이 산신을 親見(친견)했고 또 경덕왕 때는 5악과 3산의 神(신)이 대궐 뜰에 나타났고 헌강왕은 포석정에서 남산 신이 나타나 춤추는 것을 보기도 하고 금비령에서는 북악 신이 춤추는 것을 보았다. 이것이 뒤에 山神舞(산신무)가 된다.

 

新羅 제 5대왕 파사왕은 메뚜기로 인한 농사 피해를 없애기 위해 산천에 제사지냈고 7대 일성왕은 북쪽 순례시 태백산에 친히 제사지냈으며 백제 곤초왕은 단을 모아 천지 산천께 제사지냈다. 고구려 평원왕은 가뭄을 당하여 끼니를 줄이고 산천에 기도하였고 부여에서는 왕이 자식을 구하기 위하여 산천에 제사지낸 일이 있다.

 

그 전 사람들은 3월3일 낙랑의 언덕에 모여 사냥하고 거기서 잡은 짐승을 제물로 하여 천지신명께 제사지냈다. 그리하여 신라에서는 奈歷(나력) · 骨火(골화) · 穴禮(혈례) 三山(삼산)과 토함산· 지리산· 계룡산· 태백산· 북악산 등에서 上祀(상사)· 中祀(중사) 를 지내고 霜岳(상악) · 雪岳(설악) · 감악 · 서술 등 전국 24처에서 小祠(소사)를 올렸다.

 

모두 이것은 국가수호와 재해방지를 위한 국가적인 행사였다. 고려 태조는 산천의 陰祐(음우)로 나라를 세웠다고 山天(산천)을 지극히 섬겼고 태종은 佛事(불사)를 위해서는 팔관회를, 신들을 위해서는 천령, 용신, 대천과 5악 명산을 받들도록 교시하였다.

 

특히 고려에서는 부소산과 송악, 鵠嶺(곡령) 등이 텃밭이 되었다. 그리하여 先王先后(선왕선후)에 대한 加上尊號(강상존호), 大廟親祭(대묘친제)나 왕의 순행 귀환 시에는 산에다가 加號(가호)를 시행하였는데 가호란 神號(신호), 德號(덕호), 勳號(훈호), 尊號(존호), 爵號(작호), 總正(총정), 知幾(지기) 등을 주어 그 자체를 높임으로써 그 이름을 영예롭게 하는 풍습이 생겼다.

 

삼별초난이 평정된 뒤에는 무등산, 금성산, 감악산의 陰祐(음우)를 감사한 것이 그 본이다. 또 국가가 변고가 있을 때에는 대궐 뜰 안에 산천의 신들을 모셔다가 왕이 친이 제사를 지내기도 하고 산천에 초막을 짓고 神兵(신병)을 보셔 기원하였다.

 

東 금강산, 南 지리산, 中 삼각산, 西 묘향산 , 北 오대산은 고려 후대의 오악으로 섬겼고 東 오대산, 南 속리산, 中 백악산, 西 구월산, 北 장백산 5산은 이미 태조 때부터 제사 지내온 산이다.

 

이것이 나중에 민속신앙에서는 鎭山(진산)이 지역의 수호신으로 섬겨졌으며 특히 정현모주와 선도산성모 성거산성모(고려왕조 시조여신), 남해왕부인 운거산성모, 지리산성모 천왕은 다 女山神(여산신)으로서 크게 받들어지고 있다. 여기서 노적봉 산 할미사상이 나와 물 할미와 지모신과 산모신이 3位 神(신)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데 이렇게 山岳信仰(산악신앙)이 숭배되어오는 과정에서 道敎(도교)의 神仙思想(신선사상)과 접합하여 山神靈(산신령)은 산 속에서 사는 신선이라 하여 仙風道骨(선풍도골)의 老人(노인) 신선사상이 구성되고 호랑이는 그의 타고 다니는 말로서 심부름을 하고 있다. 하여 仙山(선산)이라는 개념이 생기게 되었다.

 

山神祭(산신제)를 마을에서 지내면 洞神祭(동신제) 서낭굿, 별신굿, 당상굿, 등의 주신이 되고 따로 모시면 山神堂(산신당)이 되었으며 佛敎(불교)에서는 山神閣(산신각)을 지어 추모하기도 하였다.

 

*主林神(주림신)은 숲을 지키는 신이다. 산이 있으면 나무가 있고 나무가 있으면 숲이 있는데 그 나무에도 각각 木神(목신)이 있지만 그들 나무와 나무를 총괄하는 主林神(주림신)은 숲속의 왕이다.

 

화엄경에서는 이 나무신이 布華(보화)·擢幹(탁간)· 生芽(생아)·吉祥(길상)·垂布(수포)·淸淨(청정)·互意(호의)·光香(광향)·妙光(묘광)·華果(화과) 등 열 분이 나와 제 9法王子(법왕자)의 가운데서 10度(도) 만행을 실천한다.

 

16)主藥神衆主稼神 :주약신중주가신(주약신과 주가신)

*主藥神(주약신)은 약을 주제하는 신으로서 10住 가운데 제10 灌頂住(관정주)중 제10 智慧(지혜)바라밀에 해당되는데 여기에도 吉祥(길상)·栴檀(전단)·離塵(이진)·名稱(명칭)·毛孔(모공)·破暗(파암)·普發候聲(보발후성)·弊日(페일)·明見(명견)·普發威光(보발후광) 등이 있다.

 

*主稼神은 곡식신이다. 10行 가운데서 제1 歡喜行(환희행)중 제1 檀度(단도) 布施(보시)바라밀에 해당된다. 여기에도 柔軟(유연)·時華(시화)·色力(색력)·增益(증익)·普生(보생)·妙嚴(묘엄)·潤澤(윤택)·成就(성취)·見者(견자)·離垢(이구)등 10바라밀이 나온다.

 

 

               "붉디 붉은 꽃무릇(석산)은 출세갼의 가을을 재촉하는 꽃이랍니다. 가을의 출발을 나지막이 노래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