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nho lim(혜일) 2015. 5. 12. 10:19

 

                          大方廣佛華嚴經 略纂偈(대방광불화엄경 약찬게)

                                                                                                           2015. 5, 8 (금) 동산법사단 강의

                                                                                                                            혜일 임원호 법사

 

45) 休舍毘目瞿沙仙(휴사비목구사선) : 휴사우바이와 비목 구사선인

 

*보장엄 숲에 있는 휴사우바이 법문 (제7주위 불퇴주 : 不退住, 方便: 방편바라밀)

일체를 근본으로 하여 큰 소원을 세워야만 비로소 참된 보리심을 일으켰다고 말하며 근심을 떠난 편안한 離垢安隱幢解脫(이구안은당해탈)문을 설하시며 不退住(불퇴주)를 배운다.

 

선남자여, 나는 오로지 보살의 한 解脫門(해탈문)을 얻었으니 나를 보거나 듣거나 생각하고 나와 함께 있거나 공양하는 이는 모두 헛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중생들이 선근을 심지 않으면 선지식의 거두어 줌을 받지 못하고 부처님의 보호를 받지 못할 것이니, 이런 사람은 끝내 나를 볼 수 없을 것이다. 중생이 나를 보게 되면 모두 위없는 보리에서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

 

*해조국의 비목구사선인 법문 (제8주위 동진주: 童眞住, 願: 원바라밀)

智慧光明(지혜광명)을 받고 비로자나장 삼매의 광명을 얻으며 童眞住(동진주)를 배운다. 해조국의 비목수사선인 곁에서 보살의 무너지지 않는 지혜의 법문을 깨달았다.

 

이 선인은 큰 숲 속에 앉아 있었다. 선인은 나무껍질로 만든 옷을 입고 풀 위에 앉아 있었으며, 만 명의 선인과 함께 전단나무 숲에 들러 쌓여있었다. 선인이 오른손으로 선재동자의 머리를 쓰다듬은 후 그의 손을 잡자 선재동자는 자기가 무수한 부처님의 처소에 있음을 깨달았다.

 

부처님의 세계에 들어간 것이다. 그러나 선인이 다시 선재동자의 손을 놓자. 동자는 자신이 본래의 처소에 돌아와 있음을 알았다.

 

46) 勝熱婆羅慈行女(승렬바라자행여) : 승렬바라문과 자행녀

*이사나마을 승열바라문 법문 (제9주위 법왕자주: 法王子住, 力: 력바라밀)

선주삼매를 얻고 보살의 고요하고 즐거운 신통삼매와 무진륜해탈을 얻으며 法王子住(법왕자주)를 배운다.

선재동자는 높고 험준한 칼산에 올라가 불구덩이에 몸을 던져 보살의 편안히 머무르는 삼매를 얻을 수 있었다.

 

그 가르침 가운데 사람의 몸을 얻기 어렵고 모든 고난을 떠나기 어려우며, 아무런 고난도 없기 어렵고 깨끗한 법을 얻기도 어려우며, 부처님세상을 만나기 어렵고 모든 근을 갖추기 어려우며, 부처님 법을 듣기 어렵고, 선지식을 만나기 어려우며, 선지식과 함께 살기 어렵고, 바른 가르침을 듣기 어려우며, 바른 생활을 하기 어렵고 바른 법을 따라가기 어렵다 고 했다.

 

인간으로서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 부처님의 법을 듣는 것, 선지식을 만나는 것, 바른 가르침을 듣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설명한 것이다.

 

*사자분신성 자행동녀 법문 (제 10주위 관정주 : 灌頂주, 智: 지바라밀)

반야바라밀을 두루 장엄하는 반야바라밀 보장엄을 얻고 灌頂住(관정주)를 배운다.

선남자여, 이것은 반야바라밀의 두루 장엄하는 보장엄문이니 나는 항하사 부처님의 처소에서 이 법을 얻었다. 저 여래들께서 각각 다른 문으로써 나로 하여금 이 반야바라밀로 두루 장엄하는 문에 들게 하였으며, 한 부처님의 말씀하신 것은 다른 부처님이 거듭 말씀하지 않으셨다.

 

*이통현장자의 略釋新華嚴經論(약석신화엄경론)에서

優鉢羅華(우발라화: Utpala)는 번역하면 靑蓮華(청련화)로 부처님의 눈이 꽃과 같다고 한다. 波頭摩華(파두마화:Padma) 는 발두마화라 음역하기도 하는데 번역하면 紅蓮華(홍련화)이다.

 

전위와 함께 海潮(해조)가 드나드는 곳이라 이름 한 것은 자비와 지혜가 함께 화합을 드러낸 것이니, 전위에서는 자비의 문을 가지고 승진함으로써 智慧(지혜)에 계합하고, 제8주에서는 願(원)바라밀을 가지고 智業(지업)을 일으킴으로써 그 慈悲門(자비문)에 계합되는 것이며, 이는 제7위의 자비와 제8위의 지혜가 일체임을 地名(지명) 해조로 표법하여 밝혔다.

 

7주는 방편바라밀을 주제로 삼아 대자 대비한 업을 일으킴으로써 자비의 지위가 되고 8주는 願(원) 바라밀을 주제로 삼아 지혜의 업을 일으킴으로써 지혜의 지위가 되는 것이다.

 

이 지위에서 仙人(선인)을 보게 된 연유를 大論(대론)에서는 두 가지로 밝혔다. 첫째는 지혜가 청정함이 신선과 같음을 드러냄으로써 이 地位(지위)의 無功智(무공지)가 현전하여 청정무구함이 神仙(신선)과 같음을 밝히려고 한 것이며, 둘째는 무공지가 現前(현전)하면 대자대비한 행으로 異道(이도)와 함께 하여 同事攝(동사섭)으로 중생을 이끌어 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四面(사면)의 불무더기에 대하여 대소에서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불에는 네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煩惱(번뇌)의 장작을 태우고, 둘은 無明(무명)의 어둠을 깨뜨리며, 셋은 善根(선근)을 成熟(성숙)시키며, 넷은 證得(증득)할 이치를 비추어서 나타내는 것이다.

 

또 해석하여 본다면 칼은 斷德(단덕)이어서 절단하지 않음이 없기 때문이며, 불은 智德(지덕)으로 비추지 않음이 없기 때문이며, 몸을 아래에 던진 것은 障碍(장애)가 다하여 理致(이치)를 증득했기 때문이다.

곧 칼산은 증득한 主體(주체)가 되고 불무더기는 증득해야 할 대상이 되기 때문이니 이러한 불 등등이 곧 法門(법문)인 것이다.

 

칼산은 解脫德(해탈덕)이고, 불은 般若德(반야덕)이며, 理智(이지)는 곧 法身德(법신덕)이다.

栴檀(전단)이란 향나무의 이름으로 이 향나무가 독사의 熱毒(열독)을 쉬게 할 수 있는 것이니, 바로 열이 날 때에는 毒熱(독열)이 치성하지만 몸으로 이 나무에 감으면 熱惱(열뇌)가 청량하여 진다. 이는 이 선우가 법비를 내릴 때에 無明(무명)의 독사가 모두 淸凉(청량)을 얻음을 밝힌 것이다.

 

*初發心(초발심) 住(주) 이하 열 분의 十住(십주) 선지식에 대하여 대론에서는 다음과 같이 열 가지 문을 세워 十住位(십주위)의 법문을 끝맺었다.

 

최초 덕운 비구는 선정으로 관조함으로써 자기 마음의 불 지혜를 드러내어 모든 부처님의 경계를 두루 보는 광명의 문이고, 둘째 해운비구는 生死海(생사해)의 십이유지가 본래 청정한 佛國土(불국토)의 바다임을 觀(관)하는 문이며, 셋째 선주비구는 법신의 理智(이지)가 자재하고 무애하여 세속을 벗어나는 문이고, 넷째 미가장자는 세속에 있으면서 세간의 문자를 닦아가는 문이며, 다섯째 해탈장자는 세속에 거주하면서 몸에 한없는 佛刹(불찰)을 함용하며 자체의 온갖 경계와 自性(자성)의 禪定(선정)을 莊嚴(장엄)하는 문이고, 여섯째 해당비구는 眞俗(진속)이 둘이 아니어서 세간을 벗어나는 적용과 걸림 없는 신통을 통달하는 문이며, 일곱째 휴사우바이는 세간에 거주하면서 대비를 성장시키는 문이고, 여덟째 비목구사는 무공지가 현전하여 삿된 무리와 함께 하는 문이며, 아홉째 승렬바라문은 모든 사견과 고행을 거두어 주는 문이고, 열째 왕녀 자행은 지혜와 자비가 원만하므로 모든 지위의 지혜와 자비의 인과를 모두 섭수하여 동시에 구족함을 밝히는 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