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강의
法性偈(義湘大師)
동산법사단 강의 2018. 2. 9(금) 혜일 임 원 호 법사
14 仍不雜亂 隔別成(잉불잡난격별성 : réng bú zá luàn gè bié shéng)
‘(섞여있지만) 마구 흐트러지거나 뒤섞이지 않고 따로따로 이루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一大事因緣을 지으신 것이 오늘날 모든 衆生들에게 佛法을 만날 수 있게 하심이라. 중생에게 가장 큰 과제가 죽고 사는 문제를 해결함이니, 왕궁을 소유할 수 있는 王의 자리도 마다하고, 석가모니께서 求道의길을 나섰다.
종국에는 전 人類를 비롯하여 모든 중생을 한 배에 태워 此岸에서 彼岸으로 건너가는 큰 방주를 마련하셨으니, 처음에는 세상에서 ‘내로라’ 하는 스승을 찾아가서 각 禪定의 단계를 공부하셨다. 언제나 向上一路의 구도 길에서 이것이 마지막 단계인지를 스스로 점검하시고, 비록 어렵게 얻은 경지일지라도, 이것이 끝이 아님을 과감히 버리고 또다시 공부에 매진 하셨다.
인간 肉體의 限界에 다다르는 일이 極甚함으로 온몸은 살과 뼈가 달라붙어서 마른 뼈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어두운 동굴같이 생긴 두 눈은 마치 미라처럼 흉측하게 변했고, 온몸에 힘줄이 극명하게 보일정도로, 修行은 이미 6년이란 혹독한 세월 속에서 苦行으로 變質되어 가고 있었다.
어느 날 문득 이러한 苦行으로는 절대로 得道한 수 없음을 알아차린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6년의 苦行이나, 반대로 왕궁에서 物質을 추구했던 快樂으로써는 그 어떤 眞理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셨다. 이것이 바로 사랑하지만 愛着하지 아니 하고, 슬프지만 비탄에 빠지지 않는, 兩 極端을 여의는 中道를 깨달으셨던 것이다.
이후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는 힘든 苦行을 접고 江가로 나와 몸을 씻었다 마침 그 앞을 지나가던 여인으로부터 우유죽을 받아 드시고 氣力을 回復하여 다시 보리수 나무 아래 跏趺坐를 틀고 앉으셨다. 이윽고 安般守意(안반수의 出入息) 修行을 통해 禪定에 드셨다. 선정에 들어서 宿命通이 열리고 天眼通이 열렸다. 그리고 새벽별이 틀 무렵, 苦痛의 原因이 집착(渴愛:갈애)이며, 고통을 消滅시키는 수단이 道라는 苦集滅道의 四聖諦를 깨우치시며, 一切 煩惱를 끊으면서 漏盡通이 열렸다. 그리고 모든 煩惱가 소멸하여 비로소 解脫 涅槃에 드셨다.
<大涅槃經>에 따르면 부처님은 僧團을 조성하려고 결코 생각하지 않으셨으며, 승단이 그에게 의지하는 것도 원하지 않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歷史的 사건은 時間과 空間을 넘어서 그 말씀의 가르침이 오늘 지금 바로 이 자리에서 活潑潑하게 살아있음을 피부로 역력히 느낄 수 있다. 이는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이미 未來를 예견하여 十世를 중심으로 九世를 한 몫에 꿰었으니, 각각의 時間으로 들어가고 나옴이 자유로운 분이시기 때문이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法身자리에서는 이미 時空間을 疏通함이 自在하나, 중생계에서는 각각의 시간을 정밀하여 因果의 모습으로 드러나며 한 치도 틀림이 없다.
그래서 未來를 알고 싶으면 現在에 내가 지금하고 있는 行爲가 어떤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지금의 행위가 나의 未來를 결정짓기 때문이다 별도로 希望을 품는다는 것은 自身을 스스로 격려하는 정도이지, 희망이란 것이 일상과 달리 存在한다. 고 생각하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
現在에 만족스럽지 못한 마음 상태가 미래에 대한 希望이라는 단어로 마음속에 막연히 부푼 그림을 채워 넣고 스스로를 기만하기 때문이다. 희망이란 이미 내 마음속에 있는 것이다. 내가 내 깊은 마음속에서 꺼내 쓰는 것이다 그러니 현재에 집중하라. 現在에 집중하면 할수록 一念으로 無量한 幸福感을 느낄 것이다. 佛學에서는 이것을 法悅이라 부른다.
이제 끊임없이 일어나는 생각을 멈추고 무겁고 힘든 마음의 많은 짐들을 잠시 내려 놓자! 허리를 곳곳하게 펴고, 심호흡을 크게 하번 하고, 고개를 들어 푸른 하늘을 한 번 쳐다보라. 갑자기 눈물이라도 왈칵 쏟아질 듯한 감동이 밀려오지 않는가? 이때 마음이 움직였다. 內面에 도대체 무엇이 있어서 이런 感動을 느끼고 있나하고 뒤돌아본다. 깊이깊이 自身의 世界로 들어가 보자.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쓰셨던 마음이나 우리네 衆生의 마음이 둘이 아니다.
우리의 本來面目이란 모든 것을 다 돌려주고 또 돌려주고도 더 이상 돌려줄 것이 없는 것, 그것이 바로 진정한 나의 모습이다. 생각을 버리고, 또 버려서 더 이상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는 상태가 本來面目인 것이다. 그렇기에 이 法은 모든 중생에게 同一하게 적용되어서 結局에는 부처라는 자리에서 모두 만나게 되어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이렇게 진정한 自身을 발견하시고 일개 王國의 王 자리를 벗어나셔서 時間과 空間을 넘어선 大英雄이 되셨다. 그래서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신 法堂을 大雄寶殿 또는 大雄殿이라 일컫는다. 그런 위대한 영웅이 되신 世尊을 우러르지는 못할망정 옛 선사께서는 學人인을 擊發(격발)시키기 위해 모순된 질문을 하셨다. 그분 말씀이 석가모니는 누구의 노예인가. 하는 禪問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