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공부
活鱍鱍한 無位眞人(활발발한 무위진인)
조사(祖師)들의 선문답에서 한 물건이란 말이 많이 나오는데 물건이란 오염된 마음, 번뇌의 한 생각을 뜻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한 물건도 가지고 오지 않았다는 것은 순수한 본심(本心), 도(道), 진공묘유(眞空妙有)자리에서 진공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은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놓아 버리라’고 가르치신 까닭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는 마음까지도 놓아 버리라는 뜻입니다.
또 어느스님이 묻기를 생각을 일으키지 않았을 때 허물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하고 질문을 하니, “허물이 수미산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이 질문 자체가 허물이 있다는 이야기 입니다.
수미산 같다고 한 것은 수미산 같이 허물이 많이 있다. 고 하는 것입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불교의 근본적인 입장에서는 아는 것보다는 아는 것까지 끊어진 그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안다고 하는 것은 모두가 사량(思量)분별(分別)인데, 이 사량 분별로는 실상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바로 한 생각이란 말에 걸렸다는 말인데 그것이 사량 분별 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마음에 계합(契合)하기 위해서는 생각이 끊어진 자리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보살의 여든한 가지 행(行) 가운데 어린아이의 행(行)이 가장수승(殊勝)하다." 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유가와 도가 그리고 기독교와도 모두 일치하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의 생각은 순수하기 때문에 행이 수승하다고 합니다.
불교에서는 우리의 마음을 육단심(肉團心 : 우주의 별들의 세계와 관계됨), 연려심(緣廬心), 집기심(集起心), 견실심(堅實心) 등 여러 가지로 나누어 말하고 있습니다. 육단심(肉團心)이란 육체의 심정(心情)에서 나오는 마음이고, 연려심(緣廬心)은 모든 대상의 경계에 따라 일어나는 생멸(生滅)의 마음이고, 집기심(集起心)은 표면적으로는 생멸이 없는 것 같지만 잠재의식 속에 쌓여 있어서 생멸의 인(因)이 되는 마음입니다.
이와는 달리 견실심(堅實心)은 일체의 생멸이 끊어진 불생불멸(不生不滅)의 마음 인 바 이것이 우리의 본마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제8아뢰야식, 大圓鏡智)
선(禪)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본마음을 깨닫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선(禪)에도 외도선(外道禪), 범부선(凡夫禪), 소승선(小乘禪), 대승선(大乘禪), 최상승선(最上乘禪) 등 여러 가지 선이 있습니다.
외도선과 범부선은 불교의 수행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외도선과 범부선 에서는 밖에서 구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소승선 부터가 불교적 수행인데 소승선 에서는 아(我)가 공(空)했다는 것은 알지만 아직 밖의 경계가 공(空)했다는 것까지는 깨닫지 못하여 대상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대승선에서는 밖의 대상까지도 공(空)했다는 사실을 알아서 보다 적극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 선(禪)입니다. 최상승선이란 우리의 마음 그대로가 불과(佛果)로써 진리와 차이가 없음을 믿어서 닦을 바도 없고 행할 바도 없으며 증(證)할 것도 없다고 하는 선(禪)입니다. 이것이 참된 불교적 선(禪)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은 1찰나(一刹那)도 쉬지 않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1찰나에 9백 가지 생각이 생멸(生滅)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선(禪)을 수행하다 보면 조용해지는 마음, 즉 정념(靜念)의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자타(自他)가 본시 공(空)했음을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조용해진다고 하는 생각까지 버려서 조용하고 소란함이 둘이 아니요, 모든 대립(對立)과 갈등이 일어나지 않는 열반적정(涅槃寂靜)의 진여심(眞如心)을 자각하는 것을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불교는 밖에서 찾아 얻으려는 것이 아니며 본시 정(定)한 진여자심(眞如自心)을 자증(自證)하려는 것이므로, 모든 것을 헤아려 생각하는 것보다는 생각 없음을 귀하게 여기며, 인위적인 행위보다는 아무 꾸밈없음을 소중히 여깁니다.
불교에서 무념(無念)과 무위(無爲)를 주장합니다. 이것은 단지 소극적으로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가 곧 무념이며 모든 행위가 곧 무위(無爲)임을 (자각)自覺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보다 더 적극적이요 긍정적인 사고입니다.
즉 모든 것을 생각하되 생각한다는 상(相)을 지니지 않고 생각하며, 모든 일을 하되 한다는 생각 없이 할 때 참으로 자유롭고 활발발한 참사람의 생활이 전개되는 것입니다.
불교의 가르침은 이와 같이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참인간(眞人)으로서 자유롭고 자신 있게 살게 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방산굴 법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