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方廣佛華嚴經 略纂偈(대방광불화엄경 약찬게)
2016. 2, 12 (금) 동산법사단 강의
혜일 임원호 법사
87)光明覺品問明品(광명각품문명품):광명각품과 보살문명품
1)光明閣品(광명각품)
믿음의 대상인 부처님의 의업(意業)의 경계가 한량없다고 설한다.
문수보살이 부처님 명호의 사제(四諦)의 이름을 설하자 세존은 두 발바닥의 상륜(相輪)에서 백억의 광명을 나투시어 두루 삼천대천세계(三千大天世界)의 일체의 것을 비추어 보이셨다.
그 광명을 통해보니 각각의 세계에서 부처님이 연화장의 사자좌에 앉으시고 문수보살등 무수한 보살이 와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 그리고 일체처(一切處)의 문수보살이 게송으로써 부처님을 찬탄한다.
문수의 게송(偈頌)이 끝나자, 세존의 광명은 더욱 시방의 십불국토(十佛國土)를 두루 비추는데, 거기에 나타나는 일체처의 문수보살 또한 게송(偈頌)으로써 부처님을 찬탄(讚嘆)한다.
그래서 세존이 또 다시 시방의 백의 세계를 비추어 보이니 이들 세계에 각각 문수보살이 있어 부처님을 찬탄한다. 이와 같이 하여 세존의 광명이 한없이 시방(十方)으로 널리 퍼져있다.
여기는 문수보살의 노래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불신(佛身)이 ‘일체시방(一切十方)에 가득차고 허공계(虛空界)에 충만‘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문수보살의 노래(偈)에는 다음과 같은 언구(言句)가 있다.
능문시방불(能問十方佛) 능히 시방의 부처님께 물으며
기심상담연(其心常湛然) 그 마음이 항상 담연하여
신불불퇴전(信佛不退轉) 부처를 믿고 퇴전치 않으며
위의실구조(威儀悉具足) 위의를 다 구족하게 되면
일체유무법(一切有無法) 일체 유무의 법이
요달비유무(了達非有無) 유무가 아님을 확실히 깨닫게 된다.
여시정각찰(如是正覺察) 이와 같이 올바로 관찰하면
능견진신불(能見眞實佛) 능히 진실한 부처를 볼 수 있다.
2)菩薩問明品(보살문명품)
믿음을 성취하는데 방해가 되는 의심을 밝히고 있다.
문수보살이 각수(覺首)⋅재수(財首) ⋅ 보수(寶首) ⋅ 덕수(德首) ⋅ 목수(目首) ⋅ 근수(勤首) ⋅ 법수(法首) ⋅ 지수(智首) ⋅ 현수(賢首) 등 아홉 보살에게 차례차례 연기(緣起)와 교화(敎化)와 업과(業果)와 설법(說法)과 복전(福田)과 정법(正法)과 정행(正行)과 조도사(助道事)의 한결 같은 도(道)의 아홉 가지 깊은 이치를 물었는데, 아홉 보살은 각각 노래(偈頌:게송)로 대답하였고, 아홉 보살의 물음에 대하여 문수 보살도 노래로, 여래의 깊은 경계는 허공과 같아서 일체중생이 거기 들어가면서도 실제로는 들어가는 데가 없다고 대답하여 믿음의 근거가 되는 지해(知解)를 내게 하였다.
이 보살들의 10 가지 문답(問答)은 열 가지 깊은 법(십심법:十深法)이라고 불리고 있다. 즉 각수보살은 연기심심(緣起甚深)을 보이고, 재수보살은 교화(敎化)심심을, 보수보살은 업과(業果)심심을 보이는 것이니, 이를 통해서 중생의 현실을 잘 파악하도록 하고 있다.
또 덕수보살은 설법(說法)심심, 목수보살은 복전(福田)심심, 진수보살은 정교(正敎)심심으로 불교화의 모양을 보이고 있다.
법수보살은 정행(正行)심심, 지수보살은 조도(助道)심심에 의해 교화에 의한 수행을 보이며, 현수보살은 일승(一乘)심심, 무수보살은 불경계(佛境界)심심으로 구경블과(究竟佛果)의 불가사의함을 바로 알도록 설한 것이라고 해석되고 있다.
이를 통해서 청정한 신심(信心)을 개발토록 하였다. 이러한 보살들의 문답을 몇 가지만 소개하기로 한다.
먼저 문수보살이 각수보살에게 물었다. 마음의 성품(心性:심성)은 하나인데 어찌하여 갖가지 차별을 보는가? 각수보살이 게송으로 답하였다.
법의 성품은 본래 남이 없지만
시현(示顯)하여 남이 있으니
이 가운데에 능히 나타냄도 없고
또한 나타난 물건도 없도다.
부처님의 교법(敎法)은 하나인데 중생(衆生)들이 보고 어찌하여 즉시에 온갖 번뇌(煩惱)의 속박을 끊지 못하는가? 문수보살이 게송으로 답하였다.
마치 나무를 비벼 불을 구함에
불붙기 전에 자주 쉰다면
불기운도 따라서 없어지나니
게으른 자 역시 그러하도다.
부처님 말씀처럼 만약 중생이 정법(正法)을 받아 지니면 일체 번뇌를 끊을 수 있을 것인데, 어찌하여 정법(正法)을 받아 지니되 끊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법수 보살이 게송으로 답하였다.
어떤 사람이 남의 보물을 세어도
스로는 반전도 없는 것같이
법을 닦아 행하지 아니하면
많이 듣기만 한 것도 그러하도다.
불법 가운데는 지혜(智慧)가제일 인데 여래께서는 무슨 까닭에 중생을 위하여 보시를 찬탄하고 혹은 내지 지혜를 찬탄하여 자비희사(慈悲喜捨)를 하시는가? 지수보살이 게송으로 답하였다.
인색(吝嗇)하면 보시(布施)를 찬탄하고
금지함을 깨뜨리면 계(戒)를 찬탄하고
성 잘 내면 인욕(忍辱)을 찬탄하고
나태하면 정진(精進)을 찬탄 하시 도다.
그 중 모든 부처님은 한결같이(一道:일도) 생사에서 벗어나는데 왜 불토(佛土)의 일이 각각 다른가 하는 질문에 답하여, 현수보살이 게송으로 답하였다.
문수여, 법이 항상 그리하여(文殊法常爾)
법왕은 오직 한 법뿐이니(法王唯一法)
일체 걸림 없는 사람은(一切無礙人)
한 결 같이 생사에서 벗어나느니라.(一道出生死)
이 게송은 원효대사가 대중 속으로 회향(回向)하러 들어가면서 읊었다는 유명한 게송이다. 끝으로 여러 보살들이 문수보살에게 말씀하였다.
우리들이 아는 것을 말하였으니, 묘한 변재(辯才)로 여래께서 소유하신 경계를 말해주라는 질문에 문수보살이 게송으로 답하였다.
여래의 깊은 경계(境界)는
그 양(量)이 허공과 같아서
일체중생(一切衆生)들이 들어가되
실로 들어간 바가 없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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