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 동산법사단 혜일 헐방

경전강의

wonho lim(혜일) 2018. 6. 12. 15:21


法性偈(義湘大師)

                                                                                   동산 법사단 강의 2018. 6. 8 () 혜일 임 원 호 법사

 

18 十佛普賢大人經(십불보현대인경 : shì fó pǔ xián dàrén jing)

열분 부처님과 보현보살, 대인의 경계로세

 

열 부처님의 이름은 正覺佛, 願佛, 業報佛, 住持佛, 化佛, 法界佛, 心佛, 三昧佛, 性佛, 如意佛 이며, 이는 菩薩이 수행을 완성하여 성취할 때 각각의 경지에 따라 그 이름을 달리한다.

보살이 수행을 통해 十佛을 만나고자 한다면 능히 그 마음을 無住 不來不去 하게 해야 한다. 죽 머물지 않고, 오지도 가지도 않게 하라. 그러면 그 마음에 각각의 부처님께서 나타나신다. 그런데 여기서 十佛宇宙 萬法相關의 이치를 여실히 이해하였을 때 나타나는 부처님으로서, 보살이 제8 不動地에서 無功用智를 얻어 지혜로써 부처님의 境界에 들어갈 수 있기에 十佛을 보게 된다.

 

<화엄경>에 이르길

또 그는 원하자마자 한순간에 백천 만억의 셀 수도 없는 三昧를 얻어 거기로 들어가고, 백천 만억의 셀 수도 없는 부처님 나라에 들어가고, 백천 만억의 셀 수도 없는 중생을 제도할 수 있습니다. 불자여! 이것이 보살의 제8지인 不動地입니다. 라고 했다. 佛菩薩名號는 불보살이라서 大人境界가 펼쳐지는 것이 아니라, 大人의 경계를 펼치기 때문에 그러한 名號가 따라 붙은 것이다. 명호는 단지 名號일 뿐임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이름을 따라 가는 것은 本來面目이 아니다.

 

사람이 얼마나 어리석기에 이름을 좇아 헤매는가, 돈을 실컷 벌고 나면 유명해지고 싶어서 안달이 난다. 名譽나 평판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허망한 이름에 끌려 다니며 사는 俗人들이나 하는 짓이다. 속인이란 문자 그대로 계곡에 빠져 사는 사람이다. 무슨 계곡일 까? 自身周邊이 온통 固定觀念과 같은 에 둘러싸여 있어서 자신의 깊고 깊은 主觀的 見解의 골짜기에 빠져 사는 사람을 말한다.

 

하여튼 남의 눈을 意識하는 것은 자신이 主人公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아니다. 누군가가 自身을 자연스럽게 불러주는 것이 이름일 뿐이다. 김춘수의이라는 가 대표적으로 그것을 말한다. 너를 꽃이라 불러주었을 때 비로소 꽃이 되지 않았는가! 여기서 大人이란 大人君子를 줄인 말로서 큰사람의 도량이며, 바다와 같이 넓고 큰 慈愛로운 마음을 쓰는 사람이다.

 

儒敎에서 는 理想的 인간상으로서 君子를 내세웠다. 君子言行一致되고 점잖으며 이 높은 사람을 일컫는다. 道家에서는 君子眞人이라 표현하고, 佛家에서는 菩薩이라 한다. 보살은 菩提 薩埵의 준말로써 覺有情을 뜻한다. 여기서 은 추구할 대상이고 有情은 중생으로서 제도할 대상이다. 다시 말해 菩薩은 깨달았지만 情識이 남아 있는 자를 말하며, 깨달음을 구하는 有情, 또는 道心을 가진 衆生을 의미한다.

 

푸른 하늘을 이불로 덮고 높은 산을 베게 삼아 온 우주를 한마음으로 품는 慈悲의 마음이 大人의 큰마음 씀씀이다. 홀로 자신만이 몸을 싣고 떠나가는 배의 노를 젓는 것이 아니라, 自身을 텅 비워 큰 배로 만들어 因緣되는 모든 衆生을 그 배에 싣고 佛國土世界로 함께 가는 것이 바람직한 이상적 大人境地이며, 自利利他 하는 菩薩의 길이다. 그래서 佛敎的 大人은 바로 無我인 것이요. 無我가 세상에서 제일 큰사람이라 하겠다.

 

대승경전인 華嚴經』「入法界品은 선재동자가 文殊菩薩을 만나 가르침을 받아 根本智를 얻고, 다시 差別智(差別智 : 後得智에 의해 眞理를 깨달은 뒤, 개별사안에 관한 구체적인 지혜)를 얻기 위해서 53명의 善知識을 찾아 求道여행을 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선재동자가 53선지식을 친견 후 맨 마지막으로 만난 분이 바로 普賢菩薩이다. 선재동자가 선지식 등을 차례대로 만나는 순서에 어떤 의미를 둔다면 普賢行求道의 완성을 의미하며, 이로써 선재동자는 깨달음을 얻고 부처님의 세계로 들어간다.

 

佛敎의 해박한 理論이나 理致만을 따져서는 별 所得이 없다. 주위에 딱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외면하고, 자신의 배만을 불리는 자가 八萬大藏經을 앞뒤로 다 외우고, 修行의 각 境地에 대하여 자세히 안다고 할지라도 생활 속에서 실천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물론 옛말에 그 사람 때문에 그의 말까지 버리지는 말고, 그의 말 때문에 그 사람까지 버리지는 말라.” 고 했지만, 오히려 이런 사람들은 공부에 發心을 하려는 사람들조차 佛門에서 내쫓아 버리니 마구니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생전에 법정스님은 佛敎공부가 于先이 아니라 사람이 되는 공부가 먼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그리고 중국의 남회근 선생께서도 말씀하시길 부처가 되거나 神仙이 되려고 생각하지마라. 사람이 건강하고 유쾌하게 살다가 죽을 때, 남에게 폐를 끼치거나 남을 힘들게 하지 않고 깨끗하게 가는 것이 훌륭한 사람이다.” 라고 하셨다. ()災殃을 불러오는 이다. 千手經讀誦하다 보면 懺悔의 열 가지 罪狀중 입으로 짓는 죄상(妄語, 綺語, 兩舌, 惡口)이 제일 많은 까닭이 오죽하면 여기 있을까! 修行은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온몸과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 문자 그대로 행위를 닦음이니, 一日一善 無爲, 無心, 無住相으로 이루어지면 이것이 곧 修行이며 선이다. 이렇게 선근을 심는 것도 행으로부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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