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 동산법사단 혜일 헐방

경전강의

wonho lim(혜일) 2018. 10. 15. 15:45


法性偈(義湘大師)

                                                                                    동산 법사단 강의 2018. 10.12 () 혜일 임 원 호 법사

 

22 衆生隨器得利益(중생수기득이익: zhōng shēng shí qi de lì yì)

중생의 그릇따라 이익을 얻으리니


노자 <道德經> 無之爲用 편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三十輻共一轂 當其無 有車之用(삼십복공일곡 당기무 유차지용)

挻埴以爲器 當其無 有器之用(연식이위기 당기무 유기지용)

鑿戶牖以爲室 當其無 有室之用(착호유이위실 당기무 유실지용)

故有之以爲利 無之以爲用 (고유지이위이 무지이위용)

*(바퀴살 복)(바퀴 곡) (늘일연) (찰흙식)(뚫을착)戶牖(지게호 창유 : 문과 창)

 

*서른 개의 바퀴살이 한 군대로 모여 바퀴통을 만드는데 그 가운데 아무것 도 없기 때문에(바퀴 틀 중간이 비어야)수레로 쓸모가 있다. *흙을 빚어 그릇을 만드는데, 그 가운데에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그릇으로 쓸모가 있다. *문과 창을 뜷어 방을 만드는데 그 가운데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방으로 쓸모가 있다. *그런 까닭에 가 아름답게 쓰이는 것은 가 쓰임이 있기 때문이다.

 

가운데가 비우지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는 물건들이 주변에 제법이다.

老子는 대표적으로 바퀴를 먼저 예로 들었다. 고대 나무 수레바퀴는 중심점을 둥근 공간 모양으로 바퀴 축을 만들었고, 축은 텅 비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으며, 어떤 바퀴살에 편중되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이며 굴러간다.

禪宗話頭 중에는 이런 내용이 있는데 道家의 철학적 내용과 전혀 무관하지 않다. 사실 禪宗道家의 가르침은 많은 부분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중국은 일찍이 노자의 思想을 기초로 禪宗을 꽃 피었기 때문이다.

***吾有一物 常在動用中 세상에 한 물건이 있는데 항상 움직이며 쓰인다.

動用中 收不得 움지여 쓰이는 중에 잡을 수 없는 것이 있다.

是甚魔? 이것은 무엇인가?

 

다음은 그릇에 비유한 대목이다. 그릇을 만들 때는 속이 텅 비워야 그릇으로서 사용이 가능하다. 그릇은 무엇인가를 담고 채우는 물건이다. 그 속이 꽉 차있다면 그릇은 전혀 사용가치가 없다. 마음이 온갖 雜念으로 채워져 있으면 상대의 말이 제대로 들리지 않고, 밖의 사물이 있는 그대로 보이지도 않는다.

 

마음은 거울과 같고, 雜念은 거울위에 티끌과도 같기 때문이다. 마음을 비우라는 이야기는 거울위에 티끌을 닦아 없애라는 말이다. 법문을 듣기 전 잠시 入定을 취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그러나 마음공부에 있어서는 실제 雜念을 제거하면 잡념이 사라지지 않고 더욱 맹렬하게 煩惱를 일으킨다. 雜念이 올라오면 가만히 놓아두고 잡념이 올라 왔구나하고 알아차리면 알아채는 순간 잡념은 사라진다. ? 알아챔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잡념이 올라온 그 자리를 꿰뚫어 사유한다.

 

그릇은 용도에 따라 그 모양이 변해야 한다. 간장을 담을 그릇이면 작은 종지 모양이 적당하며, 물을 채울 그릇이면 항아리가 적합하다. 이처럼 모든 萬象은 쓰임에 따라 형태가 달라지는데, 어느 날 간장그릇이 불평을 하면서 이야기 한다. 나는 왜 이렇게 작아, 너무 작아서 간장이나 담는 하찮은 작은 그릇으로 태어나서 너무 기분이 나빠, 저기 저 항아리 좀 봐, 저렇게 배가 불룩하게 부르고 깊은 속을 가져서 아주 많은 것을 담을 수 있으니 정말 너무 부러워! 라고 한다면 간장 종지는 그날로부터 식탁위에서 사라져 버리고 말 것이다.

어느 정신없는 사람이 식탁위에 간장을 담은 항아리를 올려놓고 식사를 하겠는가. 분수를 모르고 제 쓸모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衆生의 그릇에 따라서 각자 利益을 얻으리니. 걱정하지마라. 후에 나올 문구인 歸家隨分得資糧 이라, 집으로 돌아가는 돈과 식량은 만족스럽다. 각자의 그릇이 생긴 데로 세상에서 가장 풍족하게 담겨있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은 무엇을 담을 그릇인지를 곰곰이 생가해 보는 시간이 絶對的로 필요하다.


특히 靑少年期에 자신의 省察이 중요한 것은 이런 연우에서 비롯된 말이다. 그러나 자신의 그릇은 自身이 만드는 것! 現在不便하고 어려운 狀況을 탓하여 마치 運命論者처럼 굴지 말자. 運命은 말 그대로 내가 스스로 운전하면서 가는 거다. 부처님께서도 모든 사람은 태어나면서 자신의 運命이 결정지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現在의 나쁜 行動이던, 좋은 행동이던 그 행동에 따라 未來決定한다고 하셨다. 幸福을 위해서는 절대의 자()가 필요하다. 세상은 재고 달아서 他人과 비교하려는 마음이 싹 틀 때 不幸을 초래한다.

 

絶對的인 자대로서, 세상에서 제일가는 富者가 될 수 있는 부적과도 같은 글귀가 있다. 그것은 五唯知足이라. 스스로 족함을 아는 것이 제일가는 부자인 것이다. 제 아무리 많은 것을 所有했다고 할지라고 滿足할 줄 모르면 언제나 헐떡거리며 산다.

사실 공부가 어느 정도 끝나면 세상의 중심에 서서 당당한 主人公으로서, 宇宙萬物이 모두 내 속에 담겨 있는데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그래서 誓願祈禱를 하는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면 그 내용은 무엇인가를 자꾸 구하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구할 것이 없는 마음을 가지게 해달라는 기도로 이어진다.


비우면 비울수록 채워지는 묘한 도리가 여기에 있다. 어떤 그릇을 만들겠다는 것은 바로 誓願을 세우는 일이다. 서원이란 자신을 돌아보며 나는 어떤 인생을 살겠다. 라는 계획서를 부처님 앞에 제출하는 행위와 진배없다. 서원은 목적 있는 삶이며 目的으로 이끄는 삶이다.



                                                                              목 화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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