參 禪 門(참선문)
생각이 일어나고 생각이 사라지는 것을 生死라 하나니 생사를 당하였을 때부터 힘을 다하여 話頭를 들어야 한다. 만일 화두에 間斷이 있으면 이를 생사라 하고 또 煩惱라 하며, 그 화두가 어둡지 않으면 이는 當人이요 자기의 집인 것이다. 이렇게 어둡지 않을 때, 흑 다른 생각을 일으키면 그것은 반드시 어떤 그림자에 迷惑된 것이다.
만일 관문을 뚫지 못 했거든 어린애가 어머니를 생각하듯이 하고 닭이 알을 품듯이 하고 굶주릴 때 밥을 생각 하듯이 하며 목이 마를 때 물을 생각 하듯이 하라.
이것이 어찌 조작한 마음이겠는가. 이렇게 자세히 參究하되 조금의 빈틈과 間斷이 없도록 생각하고 또 깊이 생각하면, 반듯이 자기 집에 이를 때가 있는 것이다. 힘쓰고 힘써야 한다.
또 네 가지 요소로 된(四大) 이 더러운 몸이 순간마다 쇠퇴하는 것은 아는가. 또 네 가지 은혜의 깊고 두터움을 아는가. 또 사람이 목숨이 호흡사이에 있음을 아는가. 일어나고 앉음이 편할 때 지금의 고통을 생각하는가. 이것은 參禪하는 사람들이 날로 생각해야 할 일이니, 낱낱이 살피고 살펴보라.
만일 생사를 벗어나려고 하거든 모름지기 祖師禪을 參究하라
조사선이란 <개에게도 불성이 없다> 는 話頭이다. 이것은 1천7백가지 공안 중에서 제일의 공안이므로 천하의 衲僧들은 모두 이 “無”字 화두를 참구한다.
옛날 어떤 스님이 趙州에에 물었다.<개에도 불성이 있습니까?> 조주는 무라고 대답하였다. 일체의 含靈이다. 다 불성이 있다고 하는데 조주는 무엇 때문에 無 라고 말하였는가. 그 뜻은 무엇인가 이 무자를 끊임없이 생각하여 다니거나 머물거나 앉거나 눕거나 항상 目前에 상대하라.
마치 불덩이를 가까이 하면 곧 얼굴을 데일까 두려워하는 것처럼 無를 생각해야 한다.
佛法을 알려고 執着하면 백이면 백 다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것은 無心으로도 구할 수 없고 有心으로도 얻을 수 없으며, 말로서 지을 수도 없고 침묵으로서 통할 수도 없으며 헤아림으로서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理致의 길이 끊어지고 마음의 길이 끊어졌으며 말의 길이 끊어졌다. 재미도 없고 잡을 수도 없으며 더듬을 수도 없는 거기서, 한 생각이 폭발해 부수어져야 비로소 生死를 알 수 있는 것이요
感情이나 意識을 부수지 못하면 心火가 번득일 것이니, 바로 그 때를 당하거든 다만 의심되는 그 話頭를 들어 천 번 의심하고 만 번 의심하되, 다만 그 하나의 의심은 왼쪽에서 와도 옳지 않고 오른 쪽에서 와도 옳지 않으니라. 모든 배우는 사람은 부디 활구를 참구하고 사구를 참구하지 말라.
活句를 완전히 體得하면 佛祖와 함께 스승이 될 수 있으나 死句는 체득하여도 제 몸도 구제하지 못하느니라. 活句란 경절문(徑截門) 이니, 마음의 길이 끊어지고 말의 길이 끊어져 더듬을 수 없는 것이요 死句란 圓頓문이니 理致의 길도 잊고 마음의 길도 잊어서 듣고 이해하는 생각이 잊는 것이다.
*衲僧(납승): 禪僧(선승) (청허당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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