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 동산법사단 혜일 헐방

향상일로

wonho lim(혜일) 2015. 9. 8. 09:51

                           

                         向上一路(향상일로)

                                                                                                                                                     동산법사단장 혜일 임원호

 

오늘날과 같이 사회가 발전하고 여러 정보가 홍수같이 밀려올 때 일수록 부처님의 말씀이 더욱더 필요하여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할 시기라 여겨집니다.

 

사찰의 강원이나 승가대학, 일반 교향대학 등에서 스님과 불자님들은 부처님 말씀을 공부하여 대자대비 한 대승보살행과 수행 정진하여 불확실한 정보사회에 보탬이 되어 가정과 사회, 나라에 일익을 담당해야 종교인으로써 할 일을 다 한다고 보겠습니다.

 

이런 뜻을 감안하여 근래의 스님 중에 유불선을 통달하시고 향상일로를 외치시며 후학들을 길러내야 나라와 불교가 발전하고 우리들의 삶이 행복해진다는 일념 하에 수행 정진하셨던 오대산문의 탄허 대종사스님을 감히 조명해봅니다.

오대산 문의 큰 자랑이신 탄허 스님께서는 격동의 세월 속에서 한국불교의 좌표와 방향을 이루고자 일생을 노력하셨던 위대한 선지식이라 하겠습니다. 탄허 스님은 오대산에 입산 후 스승인 한암 스님이 열반하기 직전까지 약 16년 동안 오대산 상원사에서 한암스님의 가르침을 받으셨습니다.

 

탄허택성(呑虛 宅成 1913-1983)스님은 오대산 상원사에 한암((1876-1951)스님을 뵙기 전에 즉 입산하기 전에 약 2 년 동안 한암 스님과 약 20 여 통의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마음이 통한 것으로 보입니다.

 

“속생 금택은 글을 올립니다.. 거룩하신 모습을 뵙지 못하고 당돌하게 글을 올리게 되어 참으로 황공하여 몸 둘 바를 모르겠나이다. 스님을 우러러 존경하는 저의 마음은 잠시도 쉼이 없으니 다만 마음과 꿈을 통하여 오고 갈뿐 미길이 없나이다.,,,,,,,생략”

“보내온 글을 두 번 세 번 읽어보니 참으로 일단의 좋은 문장과 필법이네 ...생략, 이미 심월(心月)이 서로 비추어서 묵묵히 그냥 있을 수가 없네.”,,,생략

 

편지의 내용에 심월(心月)이 서로 비춘다는 것은 의기가 상통했기 때문이라 여겨집니다. 이러한 계기로 탄허 스님은 20대 초반에 한암 스님을 찾아가 뵙고 불교계에 입문 하게 됩니다.

 

탄허스님은 평소에 배움과 학문에서 근본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였습니다. 스님은 자신이 전통적인 구학(舊學)만을 배우고 신식학문은 일체 배우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공개강좌와 칠판에 판서 강의를 자주 하셨습니다. 강의를 진행하면서도 종지가 있는 학문을 강조하였습니다.

 

강의하는 도중에 “옛 선인들이 배운 동양학(東洋學), 우주(宇宙) 인생관을 모두 수용하고 있었는데 요즈음 학문에는 종지가 없어, 대학을 나와 기능을 배웠지만 인생의 근본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개탄하였습니다.” 평소에 탄허 스님은 나라와 청년들이 미래를 위해 살아있는 종지를 지닌 학문을 해야 한다고 수시로 외쳤습니다. 스님은 불교의 학문과 세속의 학문차이가 종지의 유무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탄허 스님은 자신이 체득한 종지를 후학들에게 항상 전수하고자 하였습니다. 이러한 마음가짐은 스님의 피 끓는 애국심과 조국애에서 비롯되었다고 봅니다. 그것은 동시에 살아있는 생명체의 사랑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탄허 스님은 평소에 커다란 인재양성의 뜻을 품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한 나라와도 바꾸지 않을 만한 인재를 길러내는 일, 역사와 학문을 공부하는 일을 특히 강조 하였습니다. 스님께서 인재양성에 남달리 몰두 했던 것은 오늘의 한국불교계에서 가장 급히 힘써야 할 일이 바로 인재의 양성에 있다고 보았던 것 같습니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여러 분야를 꿰뚫을 수 있는 통재(通才)는 한 국가의 기둥이자 한 민족의 자랑임이 분명합니다. 일찍이 영국인들은 “섹스피어를 인도와 바꾸지 않겠다.”라고 하였고, 인도인들은 “간디를 영국과 바꾸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섹스피어와 간디는 영국과 인도의 자존심으로 봅니다.

 

훌륭한 인재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오랜 계획과 관심 및 지원과 관리 속에서 만들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탄허 스님은 불교정화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현토 역해를 병행하면서 인재 양성의 채찍을 놓지 않으셨습니다.

 

이렇게 탄허 스님의 의식 속에는 ‘나날이 한 걸음을 더 나아가는’ <향상일로 : 向上一路>의 가풍이 깊이 투영되어 있었습니다.

 

탄허스님은 ‘향상일로’의 선풍은 화엄(華嚴)의 십주 - 십행 - 십회향 - 십지 - 등각 - 묘각 수행위(修行位)와 맞물려 이론과 실천의 체계와 구도와 제도의 구체성을 획득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노자(老子)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학문을 하면 나날이 늘어나고, 道를 닦으면 나날이 덜어낸다.” 이러한 통찰은 불교수행에서도 적용 가능하다고 봅니다.

불교를 선(禪)과 교(敎)로 나눌 때, 선이 ‘나날이 번뇌를 씻어내는 수행’ 이라면 교는 ‘나날이 지식을 쌓는 공부’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교는 선을 위한 지도이며 나침반입니다.

 

평생을 참선수행에 매진했던 철두철미한 선사이면서 불교교학은 물론이고 사서삼경(四書三經)과 노장사상(老莊思想), 역사와 민족종교, 음양오행(陰陽五行)과 풍수지리(風水地理)를 모두 하나로 꿰뚫는 혜안(慧眼)을 가지신 분입니다.

 

탄허 스님은 세속의 변화에 대해 깊이 통찰하면서 우리나라와 인류의 미래와 관련하여 많은 예언을 남기셨습니다. 스님은⎾주역⏌과 음양오행설에 근거하여 김일부(金一夫:1826-1898)의 ⎾정역(正易)⏌을 해석함으로써 정치와 사회는 물론이고 지구의 지질학적 변화까지 예측하셨습니다.

 

신라 말의 도선(道詵:827-898)국사의 예에서 보듯이 고승들께서 예언이나 도참설은 많았습니다. 그러므로 고찰(古刹)을 보면 비보사찰(裨補寺刹)이 있습니다. 탄허 스님의 경우도 그렀습니다. 세속의 길흉화복에 조바심하며 희로애락의 삶은 살아가는 일반대중들은 스님의 학문이나 선지(禪旨)보다 예언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던 시기였습니다.

 

탄허 스님은 개미떼가 동족상잔을 벌이는 장면을 목격하면서 동족상잔의 6,25사변을 스스로 예언한 일화가 있고, (아침에 일어나면 개미떼가 자기들끼리 싸움질을 해서 수백 마리씩 죽어있는 것을 보곤 했습니다. 법당에서도 그렇고 이 상원사 의 중대 뜰에서도 그렇고 그런 것이 보이는 것 아닙니까? 하늘은 하늘의 상을 보이고, 땅은 땅의 상을 보이고 사람은 사람의 상을 보이고, 꼭 사람의 상만 보는 것이 관상이 아니거든요. 짐승들도 지진을 예지한다는데 하물며 그런 큰 난리의 조짐은 다 보이게 되는 겁니다.)(김탄허 1980)

 

그리고 지구의 지질학적 변화를 예측하기도 했지만 이는 단지 술(術)일 뿐이고, 공부의 본질이 아니라는 말씀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이어서 천안(天眼), 천이(天耳), 숙명(宿命), 타심(他心), 신족(神足), 누진(漏盡)의 육신통(六神通) 가운데 누진통만이 도(道)이고 나머지는 술(術)에 불과하다는 설명이 계속 되었습니다.

 

마술과 같은 신통력을 얻는 것이 아니라 번뇌(煩惱)를 제거하는 것이 불교수행의 본질, 종교생활의 본질이라는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이와 같이 유불선을 하나로 생각을 하면서 불교의 깨달음을 정확하게 후학들을 위해 노심초사 하시면서 어려운 여건에서도 판서를 하시면서 한사람이라도 가르쳐서 국가와 불교를 위해서 헌신하신 큰 스님이십니다.

 

편견하지 않고 이타를 생각하면서 원융화합을 강조하면서 공부를 해야 된다는 확고한 신념하에 수행하셨던 탄허 큰스님을 상기하면서 수행정진을 게을리 하지 않는 불자가 되었으면 합니다.

'대한불교 동산법사단 혜일 헐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전강의  (0) 2015.09.15
봉사활동  (0) 2015.09.13
늘 푸른대학 개강식  (0) 2015.09.07
우란분절   (0) 2015.08.29
경전강의  (0) 2015.0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