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 동산법사단 혜일 헐방

경전강의

wonho lim(혜일) 2019. 4. 19. 10:39



法性偈(義湘大師)

                                                                                                      동산 법사단 강의 2019. 4. 12 (금) 惠日 임 원 호 법사

 

30. 舊來不動名爲佛(구래부동명위불: jiù lài bù dòng mìng weì fó)

     ‘예부터 움직이지 않은 것을 일러 부처라 했네. ’

 

여기서 舊來의 뜻은 歲月을 의미하지 않는다. 굳이 時間을 나타낸다면 몇 億 萬 年, 몇 劫의 세월이라고 표현해도 그 세월을 다 말 할 수는 없다. 먼저 不動의 속성을 파악한다면 구래를 알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부동은 時間과 空間을 넘어선 法性의 자리이기에, 舊來는 ‘시공간을 넘어서’라고 풀이하는 것이 妥當하다 하겠다. 굳이 다시 정리하자면 ‘시공간을 넘어선 부동을 부처라고 부르네’ 가 되지 않을까, 不動은 앞에 나온 ‘無名無相絶一切(무명부상절일체)’ , 이름도 상도 일체가 다 끊어졌다는 表現과 다르지 않다.

 

不動이 부처로는 사찰에 모신 불상을 따라 갈 것이 없겠으나, 여기서 不動은 眞諦로서 體性을 의미한다. 그러나 用에 나와서는 폭포수와 같이 動으로서 惺惺해야 한다. 어떤 境界를 대할 때 雙으로 볼 줄 아는 智慧의 눈을 뜨지 못했다면 일반적으로 가만히 앉아서 坐禪하거나 고요한 정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것이 부처를 이루는 것으로 착각한다. 게다가 不動, 즉 空에 사로잡혀서 消極的이고 被動的인 인생을 살아간다.

 

앞서 설명했던 相卽相入의 論理로서 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한 알의 씨앗조차 宇宙를 담고 있다는 眞理를 깨달았을 때 우주의 秩序와 法性르 고스란히 담고 있는 씨앗 한 알, 그 씨앗의 體性은 不動하기에, 즉 우주의 法則을 이미 간직하였기에, 實體가 없기에, 緣起하기에 이미 부처인 것이다. 그래서 中國의 詩人 蘇東坡(소동파 1036-1101)는 頭頭萬物이 부처요 발길 닿은 곳마다 一切가 다 禪임을 無處不是禪(무처불시선)으로 노래했다.

 

이는 소동파가 東林常總(동림상총, 1025-1091)임제종 황룡파)선사로부터 받은 無情說法에 대한 話頭를 참구하던 중, 여산 폭포 앞을 지나다가 폭포 소리를 듣고 깨친 후 옲조린<溪聲山色:계성산색 >이라는 開悟詩(개오시)이다.

 

溪聲便是廣長舌 : 계성변시광장설) 시냇물 소리가 그대로 부처님 설법이요

山色豈非淸淨身 : 산색고비청정신) 산 빛이 어찌 그대로 청정법신이 아니겠는가,

夜來八萬四千偈 : 야래팔만사천게) 밤새들은 팔만 사천 법문의 소식을

他日如何擧似人 : 타일여하거사인) 뒷날 어찌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을까 ?

 

『阿彌陀經』에서 “흐르는 물과 새들, 그리고 樹木들이 모두 念佛을 하고 法을 說하다.” 고 하였다. 不動의 자리, 생각이 끊어진 자리, 法性의 자리에서는 물소리에도 부처를 찾고 큰 산을 보고도 法身임을 알아본다. 그럼 五蘊이 空하여 淸淨함을 이루었으니 무엇이 청정하다는 말일까? 無情說法을 듣는 이 境地에서는 귀로 보고 눈으로 듣는다. 그럼 보고 듣는 그놈은 무엇인가.?

 

부처는 부처를 알아보고, 衆生은 중생을 알아본다. 疏通이란 언제나 平等한 자리에서 往來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엣 사람이 이르기를 東海바다의 넓고 푸르름을 우물 속 개구리와 論하지 말라고 했다. 알겠는가? 不動의 부처는 時空間을 넘어 不生不滅이다. 南無阿彌陀佛!

 

움직이지 않는 마음을 부처라 한다. 부처는 홀로 설 수 없다. 그러나 부처는 敎와 짝하지 않고 法과 짝한다. 그래서 佛敎는 宗敎가 아니다 라고 한다. 神을 모시는 것도 아니요. 極樂과 天國에 들어가는 것을 念願하지도 않는다. 佛은 이 우주 法界 속에서 밝게 드러나며, 法은 佛을 만나야 바르게 흘러간다. 自然 그대로 드러난 이 우주를 法이라 하니, 움직이지 않는 마음이 宇宙를 담고 있다.

 

元曉스님은 一切唯心造를 깨우치고 신라로 돌아갔으나 義湘스님은 불교가 융성한 신라에서 이미 ‘한 소식’을 했다. 그렇게 불교가 융성했던 신라에서 이제는 敎學적으로 불교의 진수인 『華嚴經』들 공부하기 위해 中國으로 건너가려고 결심했던 마음을 그 무엇으로도 되돌릴 수는 없었다.

 

결국 唐나라로 건너간 의상스님은 華嚴宗의 2조인 智嚴스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화엄경』 80권을 다 공부하고 華嚴思想의 핵심요체를 가장 잘 함축하여 나타낸 「法性偈」를 지어 스승에게 認可를 받았다. 그리고「법성게」의 본 이름인「華嚴一乘法界圖」를 그렸다. 圖案은 7言頌句 30송으로 都合 210의 글자를 圖印으로 배치하였다.「법성게」는 菩薩도에 입문하는 입학장 이자 동시에 輪廻를 마치는 졸업장과도 같다. 그래서 의상스님께서는 공부를 다 마친 후학들에게 法界圖를 한 장씩 선물하시곤 했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의상스님께서는 이 「법셩게」를 지으신 동기에 대해 “理에 의하고 敎에 근거하여 간단한 槃詩(반시)를 만들어 이름에 執着하는 무리들로 하여금 그 이름마저 없는 참된 根源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다” 라고 밝힌 점을 부디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法性偈」는 法으로 시작해서 佛로 맺음으로써 佛法을 완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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