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소식’을 하여도 별다른 경계가 아니다.
일체 법문(法門)을 들어 모르는 것이 없고 이를 통해 깨달음을 체득(體得)하여 ‘한 소식’ 했다하여도 현실과 동떨어진 별난 경계가 펼쳐지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이해를 돕기 위해서 소식(消息)이란 글자를 파자풀이 해봅니다,(물水 변에 작을小, 달月: 消) 물위에 뜬 작은달을 진짜의 달로 착각錯覺)하지 않는 뜻이 되고, 지혜(智慧)를 스스로 얻은 마음(마음心, 스스로自:息)이 식(息)이란 글자가 됩니다. 바로 순수환 진리(眞理)를 터득했다는 말이 됩니다.
이 말씀은 의상대사(義湘大師)님께서 법성게(法性偈)에 칠송구(七頌句)로 남기신 증지소지비여경(證智所知非餘境)입니다. 아름알이로(所知:소지) 알았거나, 깨달음을 얻었다 하여도 모든 경계(境界)는 달라진 것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증지(證智)란 교학(敎學)을 통하거나 남에게 들은 것을 가지고 진리를 아는 것이 아니고 자신 스스로의 체험(體驗)을 통하여 아는 것입니다, 이를 체득(體得)했다. 증득(證得)했다고 표현합니다. 소지(所知)는 알음알이로 보면 됩니다. 그리고
깨달으면 무엇이 달라진것 같이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뜻이 됩니다. 바로 비여경(非餘境)입니다. 경계가 달라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말씀입니다.
깨달음에 가까워지려면 우선 교학적(敎學的)인 이해가 기본적으로 필요한데, 특히 선종(禪宗)에서는 교학을 앞에 두기보다 먼저 스스로 자신의 본성(本性), 본래면복(本來面目)을 찾을 수 있게 지도하고 있습니다.
단밖에 깨달아 돈오돈수(頓悟頓修)하는 최상(最上)근기도 있겠지만, 돈오돈수이건, 돈오점수이건 차치(且置)하고 어찌되었던, 해오(解悟)라도 되어야 경(經)을 읽거나 선법문(禪法門)을 들어도 이해가 될 것입니다, 안목(眼目)이 그만큼 넓어지게 마련입니다. 이해도 못하는 선어록에서 나오는 어려운 좋은 말씀을 매알 매일 듣는다 하여도 무용지물(無用之物)이라 여겨집니다.
안목 (眼目)이 부족하여 일어난 설화 하나를 소개합니다. 옛날 조선조 때 금강산에서 월봉스님이란 분이 천명의 학인을 모아놓고 <원각경(圓覺經)> 강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원각경의 태풍의 눈이라고 할 수 있는 대목, 무변허공 각소현발(無邊虛空 覺所顯發) 이라는 문구를 해석하는데 ‘끝이 없는 허공에서 깨달음이 들어났다고’ 풀이했습니다. 언 듯 들으면 그럴듯한데, 이 때 뒤 구석에서 앉아있던 누더기 스님한분이 ‘억’하고 ‘할’을 했습니다. 이 ‘할’ 소리를 들은 월봉스님은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하고 죽었다고 합니다,
즉 끝이 없는 허공(無邊虛空)이 각(覺:깨달음)에서 들어났다고 풀이해야 할 것을 강주(講主)는 반대로 무변허공에서 깨달음이 들어났다고 해석한 것입니다. 바로 이것은 경(經)을 보는 안목(眼目)이 없어서 조사하나 토 하나를 잘못한 바람에 주어(主語)가 바뀌면서 본 뜻이 완전히 전도(顚倒)되었기 때문입니다.
‘증지소지비여경(證智所知非餘境)’을 다시하번 강조하면 깨달음에 도달했다. 할지라도 비여경(非餘境)입니다. 즉 현상계에 있어서 특출하고 신비스럽게 그 무엇이 환상처럼 펼쳐지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대자유인으로 늘 매사에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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