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 동산법사단 혜일 헐방

물불천론

wonho lim(혜일) 2022. 7. 3. 10:08

물불천론(物不遷論)        만물은 움직임이 없다

 

이 말씀은 구마라즙 제자 승조 법사님이 조론(肇論)에서 말씀하신 것입니다.”(東晋禪僧 僧肇 法師 384-413)"

 

돌개바람이 산악을 뒤흔드나 항상 고요 하며,

강하가 다투어 흐르나 흘러감이 없다.

말이 먼지를 흩날리며 들판을 질주하나 움직이는 것이 없고,

해와 달이 하늘을 지나지만 돌지 않는다.“

(旋嵐偃嶽而常靜 江河競注而不流 野馬飄鼓而不動 日月歷天而不周)

(선람언악이상정 강하경주이부류 야마표고이부동 일월력천이부주)

 

왜 움직이는 것을 뻔히 보면서 움직임이 없다고 말하는 것일까?

 

우리가 인연(因緣)의 만남에 의하여 삶을 살아가고 있는데 우리들이 잠깐이라도 결정된 자기 모습을 갖지 않고 끊임없이 변하고 있으니, 이를 무아, 무상(無我 無常)이라 고 합니다, 여기에서 보면 무상(無常)한 움직임이 오히려 일상의 움직임을 벗어나 있고, 움직임 밖에 있는 것이 오히려 일상의 움직임으로 나타납니다.

 

잠깐이라도 고정(固定)된 시공(時空)으로 자취를 남기지 않는 무아무상(無我無常)의 연기법(緣起法)이야말로 진정한 변화(變化)며 움직임이며, 이 변화가 바로 열반(涅槃)입니다.

 

열반(涅槃)이란 Nirvana 의 음역(音譯)이고, 의역(意譯)은 적멸(寂滅)입니다., 적멸이란 죽은 듯이 고요함이다. nir, , 의 뜻이고 vana가 소리()의 뜻이다. 그러므로 무성(無聲)이다. 소리 없음(고요함)이 니르바나이다.

 

무상(無常)과 불변(不變), 부동(不動)과 동()은 손바닥의 앞뒤와 같은 것이 아니라 완전히 같은 모습이 되고 있습니다. 때문에 무상(無常)과 적정(寂靜), 무아(無我)와 해탈(解脫)은 모순처럼 보이지만 삶의 진실한 모습인 연기(緣起)실상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무상과 무아는 일상에서 나타나는 주관(主觀)과 객관(客觀), 고요함을 부정(不靜)함이 아니라 우리 삶의 본디 모습을 말합니다. 무아 무상의 본디 모습에서 보면 모든 ()이 움직임이 없는 본디 고요함입니다.

 

움직이지 않는다는 말을 쓰고는 있지만 이는 움직임과 상대(相對)하여 움직이지 않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미 움직임과 고요함 밖에 있으면서 움직임과 고요함을 나타내고 있는 근본(根本) 모습을 부동(不動) 이라고 부를 뿐입니다.

 

좀 다른 각도에서 보면 얼핏 보면 말장난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상(實相)을 보면 실제로 움직임이 없습니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우리가 보고 느끼는 모든 것들은 사실상 5 차원의 점()으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은 위치는 있어도 면적이 없어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현상계(現象界)의 움직임이 일어나는 것은 점()과 점()이 연결된 것처럼 보여 지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실존(實存)의 해석에 의해 마치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가령 tv화면 속에 화소(:)는 움직일 수 없습니다. 그러나 화면엔 다양한 움직임이 일어납니다. 실제는 움직임이 없지만 점()과 점()을 연결해 마치 움직임이 있는 것처럼 꾸며낸 것입니다.

 

 

*사물(事物)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과거(過去)에서 현재(現在)로 이동() 하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의 사물은 과거에 있고, 현재의 사물은 현재에 있습니다.(자성:自性, 즉 자기 동일성: 同一性의 부정:否定)

 

과거의 사물이 현재로 옮겨왔다고 착각하는 것은 기억의 작용, 즉 아집(我執) 때문입니다. 사물은 연기(緣起)에 의해 오직 찰나 찰나 변화(變化)할 뿐입니다.

 

물불천론(物不遷論)은 사물의 운동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의 자성을 부정하는 것이며 이로써 사람들의 아집(我執)을 타파하여 열반(涅槃 : 마음 편한)을 이루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물불천(物不遷)은 제행무상(諸行無常)의 다른 표현일 뿐입니다.(케플러의 중국어 번역 작업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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