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교란 무엇인가?
간단하게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은 아닙니다. 불교는 팔만대장경 이라는 방대한 경전이 있어서 이 경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저 경을 보면 저렇게 말씀하는 등, 누가 어떤 것이 불교냐고 물으면 이것이 불교라고 한 마디로 대답하기가 참 곤란합니다. 예수교는 성경, 유교는 사서삼경(四書三經), 회교는 코란이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불교는 통칭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이라 하니 누가 들어도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그렇게 많으니 무슨 말씀인지 알기 힘들고, 설사 좀 안다고 하여도 간다하게 어떤 것이 불교라고 한마디로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또 하나 하나 이야기 하자면 끝이 없으니 간단히 무엇을 불교라고 해야 하겠습니까?
우선 불교라는 말 자체에서 보면 불교(佛敎)란 즉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부처란 인도말로 붇다(Buddha)라고 하는데, ‘깨달은 사람’이란 뜻입니다. 부처의 가르침이므로 결국 깨달음에 그 근본 뜻이 있습니다. 만약 불교를 논의함에 있어서 깨친다는 데에서 한 발짝이라도 떠나서 불교를 말한다면 그것은 절대로 불교가 아닙니다.
불교의 근본인 그 깨친다는 것은 일체 만법의 본원 그 자체를 바로 아는 것을 말합니다. 일체만법(一切萬法)을 표현 하자면 법성(法性)이라 하고, 각각 개별적으로 말할 때는 자성(自性)이라고 하는데, 그 근본에서는 법성이 즉 자성이고 자성이 즉 법성이니, 자성이라 하든 법성이라 하든, 이 본원 자체를 바로 깨친 사람을 부처(佛)라 합니다. 또한 부처님의 가르침이란 법성이나 자성을 바로 깨치는 길, 즉 깨치는 방법을 가르지는 것이 그 근본(根本)입니다.
일반적으로 종교는 신앙의 대상으로서 절대신(絶對神)을 전재로 하고 있지만 불교는 오직 일체 만법의 법성인 자기 자성을 바로 깨치는 것을 근본으로 삼는 것이니 불교 이외의 다른 어느 종교에서도 이와 같은 이론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것이 불교가 숭장하는 가장 높고 가장 깊은 진리로서 천고만고에 변할 수 없는 독특한 특색입니다.
불교는 성불(成佛) 즉 부처되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러나 언설과 이론만 가지고는 성불하지 못합니다. 아무리 큰 학자라도 언설과 이론만 기지고서 성불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럼 우리가 무엇 하려고 팔만대장경을 만들어 놓았는가?
금강산이 천하에 유명하고 좋기는 하나 그것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는 안내문이 필요합니다. 금강산을 잘 소개하면 ‘아’ 이렇게 경치 좋은 금강산이 있구나, 우리도 한번 금강산 구경을 가야겠구나, 생각하고 드디어 금강산을 실제로 찾아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안내문이 없으면 금강산이 그렇게 좋은 곳인 줄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그와 마찬가지로 이 언어문자로 이루어진 언설과 이론인 팔만대장경은 깨달음을 이루기 위한 일종의 로정기(路程記)입니다.
팔만대장경에서 불교란 이런 것이다. 부처란 무엇이다. 라고 설명하고 소개하고 있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부처님이 귀하고 높으며 불교가 좋은 줄 알아서 믿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언어문자로 된 안내문이 없었다면 부처님의 훌륭하고 좋은 법을 몇 사람이나 알고 있겠습니까?
이러한 언어문자의 기록이 있기 때문에 불교를 알게 되고 마침내는 부처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팔만대장경이라는 노정기에 의지하여 실제로 길을 가서 부처가 되어야 합니다.
서울을 가려고 하면서 서울 안내판이나 소개문을 아무리 들여다보고 있어 보았자 서울을 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한 걸음을 걷든지 두 걸음을 걷든지 햐여 마침내 남대문으로 숙 들어가야지, 그러기 전에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언어문자인 팔만대장경이 성불하는 노정기인 줄만 분명히 아는 것도 꼭 필요한 것입니다.
선가(禪家)에서는 언어문자(言語文字)를 무시하고 배격하며 교가에서는 언어문자를 숭상한다고 흔히 생각하고 있는데, 만일 그렇게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교(敎)는 꿈에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교도 부처님의 가르침이지 외도의 가르침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가(敎家)에서도 깨치는 것을 근본으로 삼았지, 안내문만 읽으면서 평생을 지내라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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